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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의 민심 수습책


(  admin   2011년 02월 06일   )

태조는 즉위 초부터 백성들의 생활 안정이 국가 존위의 근본이라는 인식 아래 국내 정책 중 민심 안정책에 가장 역점을 두었다. 즉 태조는 즉위한 달인 태조 원년 6월에 심곡사(審穀使)를 두어 양곡 저축의 현황을 살펴서 홍수나 가뭄, 기근에 대비하게 하였으며, 다음 달에는 궁예 이래 가혹하였던 세제를 바로 잡아 부세(賦稅)를 가볍게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흑창(黑倉)을 설치하여 곤궁한 백성을 진휼케 하였으며, 가난에 못이겨 노비가 되는 백성을 가엽게 여겨, 면포를 내어 속량시킨 사람이 일시에 천여명에 달한 적도 있었다 한다.



태조의 대민 정책에 대해서는,《고려사》 식화지의 서문에 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고려 태조는 즉위하여 먼저 전제(田制)를 바로 잡고 부세(賦稅)를 법도 있게 하였으며, 농업과 누에 치기를 장려하였으니 가히 그 근본을 알았다 할 것이다.'라 하였다.



신라 말기에 귀족과 호족들의 토지 겸병과 정치 기강의 해이로 전제와 세제가 문란해져서 백성들의 생활은 도탄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태조는 먼저 그 시정책을 강구하였던 것이다. 물론 호족이 득세하고 중앙 행정력이 극도로 미약한 당시의 여건으로서 큰 성과를 거둘 수는 없었겠지만, 태조의 이와같은 대민 정책의 정신은 민심의 안정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